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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시

조회 수 3519 추천 수 0 2005.01.29 11:12:39
늙어가는 아내에게


"늙어가는 아내에게"
- 황지우 -

내가 말했잖아
정말, 정말, 사랑하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 나 사랑해?
묻질 않어
그냥, 그래,
그냥 살아
그냥 서로를 사는 게야
말하지 않고, 확인하려 하지 않고,
그냥 그대 눈에 낀 눈꼽을 훔치거나
그대 옷깃의 솔밥이 뜯어주고 싶게 유난히 커보이는 게야
생각나?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늦 가을.
낡은 목조 적산 가옥이 많던 동네의 어둑어둑한 기슭,
높은 축대가 있었고, 흐린 가로등이 있었고
그 너머 잎 내리는 잡목 숲이 있었고
그대의 집, 대문 앞에선
이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바람이 불었고
머리카락 보다 더 가벼운 젊음을 만나고 들어가는 그대는
내 어깨 위의 비듬을 털어 주었지
그런거야, 서로를 오래오래 그냥, 보게 하는 거
그리고 내가 많이 아프던 날
그대가 와서, 참으로 하기 힘든, 그러나 속에서는
몇 날 밤을 잠 못자고 단련시켰던 뜨거운 말;
저도 형과 같이 그 병에 걸리고 싶어요

그대의 그 말은 에탐부톨과 스트렙토마이신을 한 알 한 알
들어내고 적갈색의 빈 병을 환하게 했었지
아, 그 곳은 비어 있는 만큼 그대의 마음이었지
너무나 벅차 그 말을 사용할 수 조차 없게 하는 그 사람은
아픔을 낫게 하기 보다는, 정신 없이,
아픔을 함께 앓고 싶어하는 것임을
한밤, 약병을 쥐고 울어버린 나는 알았지
그래서, 그래서, 내가 살아야 할 이유가 된 그대는 차츰
내가 살아갈 미래와 교대되었고

이제는 세월이라고 불러도 될 기간을 우리는 함께 통과했다
살았다는 말이 온갖 경력의 주름을 늘리는 일이듯
세월은 넥타이를 여며주는 그대 손끝에 역력하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아침 머리맡에 떨어진 그대 머리카락을
침묻은 손으로 짚어내는 일이 아니라
그대와 더불어, 최선을 다해 늙는 일이리라
우리가 그렇게 잘 늙은 다음
힘없는 소리로, 임자, 우리 괜찮았지?
라고 말할 수 있을때, 그때나 가서
그대를 사랑한다는 말은 그때나 가서
할 수 있는 말일 거야


김희영

2005.01.29 12:09:30

"어느날 나는 흐린주점에 앉아 있을거다"
저는 이 시가 더 좋아요..

좋은친구

2005.01.29 12:13:33

김광석님의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란 노래가 생각나네요...
'곱고 희던 그 손으로 넥타이를 메어주던 때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 때를 기억하오 ...' 늙어가면서 '우리 괜찮았지?'라고 말할 수 있으면 ... 좋은거 아닐까싶습니다.. 저두 그런 말 할거에요...^&^

이창주

2005.01.29 12:35:59

이곳에 만 놓기엔 너무도 아까운 글이에요
사랑이 무언지..인생이 무언지..희생이무언지..아직 모르는 나이인지라...
하지만 벌써 작게 나마 이해가 될것 같은 나이임에 한숨을 쉬어 봅니다.
항상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살 맞대며 살아가는 아내와에 현실속에서
깜박깜박 잊어버리고마는 아내에 고마움을 형진형님을 통해 다시금 상기함을 다행이라 여겨집니다 .
나중에 저도 인생에 계단을 아내와 함께 정성스레 조금씩조금씩 올라가 정상무렵이 되면 정말 아내와 힘없는 소리로"임자,우리 괜찮았지?"라고 말하고싶어요..

이병윤

2005.02.02 23:45:36

가는 세월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듯이...
사는동안 서로 사랑하며 곱게 늙길 바랄뿐 이겠죠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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