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저 아기 좀 봐."

"아이구, 애를 어떻게 했기에 이리 됐어. 쯧쯧쯧..."

오늘도 엄마 아빠는 은총이와의 외출에 한바탕 소동을 겪는다. 은총이의 검붉은 피부를 보고, 화상을 입은 줄 알고 애를 어떻게 했기에 이리 됐냐며 나무라는 어르신들부터 괴물이라고 손가락질하며 신기하게 쳐다보는 아이들까지...

엄마 아빠 눈엔 예쁘고 여느 아이들과 똑같은 아이일 뿐인데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은 늘 이렇게 은총이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곤 했다.

은총이가 태어나던 날,

아빠는 갓 태어난 은총이를 안고 병원 이곳저곳을 뛰어다녀야 했다. 얼굴부터 발끝까지 온 몸에 검붉은 반점들을 안고 태어난 아이, 은총이. 우리 아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망가진 듯 뛰어대는 심장을 안고, 아빠는 병원 이곳저곳으로 정신없는 발걸음을 옮겼다.

"처음엔 차츰 없어질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은총이가 백일쯤 되었을 무렵이었다. 고사리 같이 작은 손을 떨기 시작하더니 왼쪽 팔과 다리, 얼굴에 경련이 일며 갑자기 경기를 하기 시작했다.

"여보, 은총이가 이상해. 여보!"
그렇게 다시 아빠는 은총이를 들쳐 업고 병원을 향해 뛰었다. 이후로 얼마나 더 병원 응급실을 오갈지는 꿈에도 생각 못한 채...

보름만에 겨우 깨어난 은총이에게 내려진 진단은 이름조차 생소한 희귀난치병. "스터지 웨버 증후군입니다. 뇌혈관 기형으로 검붉은 반점이 나타나고 경기를 동반하며 뇌가 서서히 위축되어 가는 희귀병입니다. 포기하시는 게... 6개월 이상은 힘듭니다."

이제 막 세상의 빛을 본 아이에게, 열 달을 날마다 손꼽아 기다린 아이에게, 혼자 고통에서 허우적대다 보름만에 겨우 빠져나온 아이에게 하는 말이 고작 포기라니 이제 남은 시간이 길어야 몇 달이라니...

이후로 은총이의 경기는 하루가 멀다 하고 나타났다.

경기 약만 해도 여섯 봉지나 먹었지만, 은총이는 자면서도 온 몸을 파르르 떨며 경기를 했고, 한번 시작하면 두세 시간씩 계속되었다.

"경기가 심해지면 무호흡증으로 며칠씩 무의식 상태에 빠지기도 했는데, 하지만 숨을 못 쉬어 힘겨워 하는 아이를 보면서도 엄마로서 제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냥 지켜보는 일 밖에는... 은총이 혼자 숨 막히는 그 긴 시간을 이겨내야 했지요."

그렇게 철렁하며 내려앉는 가슴으로 응급차에 실려 병원 문턱이 닳도록 오가기를 몇 번이었을까. 깨어나지 않는 은총이를 보며 밤을 지새우기도 또 몇 번이었을까.

"며칠을 혼자서 고통 속에서 허우적대다 깨어나면 젖 빠는 것조차 잊어버렸어요. 배고파 울면서도 젖을 물려도 먹을 줄을 몰랐지요. 그 모습을 볼 때면 정말 가슴이 무너져 내렸어요."

먹는 본능조차 잊어버리기까지 아프면서 어린 게 혼자 얼마나 힘들었을지 엄마는 생각만으로도 또다시 가슴이 아려왔다. 하지만 은총이에게 찾아온 병마는 숨고르기를 할 틈새도 없이 연이어 몰아붙였다.

이곳저곳에서 또 다른 희귀질환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팔과 다리 한쪽이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지는 희귀병인 클리펠 트레노우네이 웨버 증후군부터 인터넷에서조차 검색되지 않는 희귀질환을 은총이는 여섯개나 더 지니고 있었다.

그렇게 의사들조차 제대로 증상을 알지 못하는 희귀병을 어린 은총이는 날마다 싸워내야 했다.

"처음에는 참 많이 울었어요. 은총이가 이렇게 태어난게 꼭 내 죄 때문인 것만 같아서. 그런데 하나님이 말씀하시더라고요. 우리 죄 때문이 아니라고. 은총이를 맡길 가정을 찾고 찾다가 우리에게 맡기신 거라고.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은총이를 통해 은혜를 알아가요. 은총이 때문에 더 기도하게 됐고, 하루하루 하나님께서 주시는 따스한 햇살에 감사하고, 숨 쉴수 있는 오늘에 기뻐할 줄 알게 됐으니까요."

그렇게 하루하루가 기적 같던 날들이 지나
은총이의 첫 돌을 맞던 날,

"돌잔치 준비를 다 해놨는데, 은총이가 또 경기를 일으켰어요. 백일잔치도 병원에 입원하느라 못 해줘서 돌잔치는 꼭 해주리라 마음먹었는데..."

중환자실에 누워 그칠 줄 모르는 경기에 온 몸을 바르르 떨어가며 가는 숨을 이어가는 은총이 사이로 여기저기 친지들의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첫 생일날 촛불 하나 켜지 못하고 있는데, 은총이가 병과 싸워가는 과정을 방송으로 만들고 싶다며 촬영을 해오던 촬영팀 마저 은총이를 방송에 내보낼 수 없을 것 같다며 짐을 정리하더라고요. 다른 아이들은 치료하며 좋아지는 과정을 촬영했는데 은총이는 희망적인 것이 없다고...." 그렇게 엄마 아빠는 힘겨워하는 은총이 앞에서 또 한번 무너지는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저희도 알아요. 현대의학으로 고칠 수 없는 병이란 걸. 그게 우리 아들이 갖고 있는 병이란 걸. 다만 은총이를 통해 희귀병아이들이 의료보험1종을 받고, 은총이의 방송을 보고 은총이를 도와 줄 의료진을 기대했던 건데...."

결국 엄마의 맑은 눈동자에 이슬이 맺히고 만다.
"그날 아빠가 처음으로 참 슬프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늘 이겨내자고, 할 수 있다고 위로해 주는 아빠였는데..." 가장 기쁘고 아름다워야 할 날은 그렇게 슬픔과 상처로 얼룩져 버리고 말았다.

몇 달 뒤, 아침 8시부터 밤 12시가 넘는 대수술이 이어졌다.

뇌혈관 기형으로 경기를 일으키는 오른쪽 뇌의 신경을 차단시키는 수술로, 서서히 석회화가 진행되며 오른쪽 뇌가 없어지며 더 이상 경기는 일어나지 않지만 어쩌면 은총이의 왼쪽 팔과 다리를 영영 쓸 수 없게 될 수도 있었다.

"1년보다도 더 긴 하루였어요. 젖먹이 어린 아이를 혼자 차가운 수술대위에 올려놓는 심정을 어떻게 말로 표현하겠어요. 제가 대신 아플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뭐든 했을 거예요."

여리고 여린 피부에 주사바늘들이 꽂혀지고, 호흡기에 의지해 실날 같은 숨을 겨우겨우 내쉬는 은총이를 보는 그 부모 마음이 오죽했을까. 하지만 이후로도 은총이는 뇌출혈과 합병증으로 중환자실과 일반실을 오가며 여섯 차례의 수술을 더 받아야 했다.

그러는 동안 아빠는 아픈 은총이 때문에 직장도 그만두고 불어나는 병원비를 감당하느라 신용불량자가 되었고, 엄마는 어려운 살림살이에 갈수록 더 허덕여야 했다. 6개의 휘귀질환을 앓고 있지만 사례가 극히 드물어 보험조차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나오는 보조금도 아빠가 작은 직장이라도 얻으면 받을 수 조차 없어 직장도 구하지 못한 채 지금은 막일로 하루벌이를 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래도 은총이만 건강할 수 있다면...그럴 수만 있다면..." 은총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며 힘주어 말하는 아빠의 작은 어깨 뒤로 엄마의 눈망울이 살포시 떨려왔다.

은총이는 이제 왼팔과 왼쪽 다리를 움직일 수 없다.

또 합병증으로 찾아온 녹내장으로 엄마 아빠가 보는 세상의 반조차도 제대로 볼 수 없다. 그뿐인가. 앞으로도 수많은 검사가 은총이를 기다리고 있고, 합병증의 위험들이 날마다 도사리며 언제 시력을 잃을지, 장에 구멍이 뚫릴지, 한쪽 손과 다리가 얼마나 비대해질지, 언제 또 뇌출혈이 일어날지, 또 온 몸에 검붉은 반점을 언제까지 안고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마 아빠는 세상처럼 은총이에게 장애1급이라고 낙인찍지 않는다. 은총이가 처음 태어날 때도 사람들은 불가능을 이야기 했지만 엄마 아빠는 희망을 본 것처럼 오늘도 엄마는 희망을 보고 꿈을 꾸기 때문이다.

"지금은 비록 아프지만 나중에 은총이가 훌륭한 목사님이 되어 전 세계를 다닐 때는 아마 이렇게 고백할 걸요.

나는 한때 장애 1급을 받았습니다.
혼자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1급입니다.
오직 주님만 의지하고 감사함으로 살았더니 지금은 보십시오.
이렇게 뛰어다니며 주님 말씀 전하고 다니니 참 감사합니다.


분명 은총이는 그렇게 간증하고 다닐 거예요. 벌써부터 은총이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해요."

초롱초롱한 눈망울 가득 웃음을 머금고 있는 은총이를 바라보며 신이 나 이야기하는 엄마 아빠. 여전히 많은 산들이 남아 있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지지만, 그렇게 가족은 오늘도 서로의 손을 꼭 마주잡고 희망이라는 햇살 사이로 씩씩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2006년 월간 낮은 울타리 6월호 - "언제나 푸른하늘" 전문 -  취재 * 글 / 김선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