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병 앓는 아이들 위해” 1500km 도보 박지훈-박봉진씨




희귀 난치병 아이들을 위해 ‘아버지의 이름으로’ 1500km 국토대장정에 도전한 ‘은총이 아빠’ 박지훈 씨(왼쪽)와 ‘여울돌 총각 아빠’ 박봉진 씨. 지난달 24일 국도 25호선을 따라 경북 청도에서 경남 밀양으로 이동하는 길에 포즈를 취했다. 사진 제공 박봉진 씨

《‘은총아, 오늘따라 유난히 우리 아들 은총이가 보고 싶구나. 엄마 말 잘 듣고 잘 먹었는지, 잘 놀았는지, 그리고 병원 가서 물리치료는 잘 받았는지.

아빠는 이 모든 게 너무 궁금하지만 우리 아들을 위해 이 대장정을 꼭 마칠게. 은총이 넌 그냥 다른 아이들처럼 아빠 곁에 있어 주기만 하면 돼. 은총아, 어제보다 오늘 더 많이 사랑한다.’》

아버지는 오늘도 걷고 또 걷는다. 강원도에서 부산으로, 부산에서 대구로, 그리고 전라도와 충청도를 거쳐 서울로 올라오는 1500km의 길고 긴 길. 7일로 26일째다.


온통 물집투성이인 발바닥은 이미 감각을 잃었다. 비타민을 먹듯이 진통제를 삼킨다. 하지만 아버지는 “괜찮다”고 말한다. 이것이 희귀 난치성 질환을 앓고 있는 아들의 고통과 함께할 수 있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은총(3) 군의 아버지 박지훈(31) 씨는 지난달 8일 머리를 짧게 깎았다. 12일 ‘아버지의 이름으로’ 발대식을 앞두고였다.

‘아버지의 이름으로’는 희귀 난치병 아이들을 위해 박 씨가 떠난 전국 도보대장정의 이름. 이 대장정엔 총각이면서도 스스로를 ‘10명의 아빠’라고 칭하는 희귀 난치성 환자 후원 모임인 ‘여울돌’의 대표 박봉진(32) 씨도 함께했다.

자신도 선천성 야맹증이라는 난치병을 앓고 있는 박봉진 씨는 2002년부터 10명의 희귀 난치병을 앓고 있는 어린이를 꾸준히 돕고 있다.

은총 군은 ‘스터지 웨버 증후군’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다. 지금도 박지훈 씨는 아들이 태어난 날을 어제처럼 기억한다. “의사 선생님이 빨리 큰 병원으로 옮기자고 했어요. 몸속의 혈관이 다 터졌다고요. 아기의 온몸이 빨갛더군요. 그 다음부턴 어떻게 뛰었는지 기억도 안 나요.”

6일간의 입원검사 끝에 알아낸 병은 이름부터 생소했다. 의사는 6개월을 넘기기 어렵다고 마음 단단히 먹으라고 했다. 뇌가 아파서 생기는 병이라고만 할 뿐 원인도, 치료법도 모른다고 했다.

‘피부 속 핏줄이 터져 온몸에 붉은 반점이 생긴다. 경기가 무척 심한 병이라 숨도 잘 못 쉰다. 뇌는 점점 굳는다. 보통 아이처럼 커 나갈 수 없다….’

의사는 악몽 같은 ‘예언’을 줄줄이 쏟아냈고 그 말은 곧 현실이 됐다. 하늘이 무너졌다.

수술과 치료를 반복하며 병원과 약국, 재활원을 오가는 동안 병원비는 산더미처럼 불어났다. 부부는 은총이를 위해 밤낮으로 달렸지만 은행원이던 박 씨는 금융채무불이행자(신용불량자)가 돼 직장에서 쫓겨났다.

박 씨는 “희귀 난치병은 길고 외로운 마라톤을 뛰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희귀병은 완전한 치료는 불가능하더라도 병의 진행을 막기 위한 치료가 계속돼야 하는 병이지만 보험혜택조차 받을 수 없다.

하지만 아버지이기에 박 씨는 포기할 수 없었다. 6개월밖에 못 산다던 은총이가 세 번째 돌을 맞는 모습을 보면서, 한쪽 뇌만 남은 아들이 재활치료에 열심인 모습을 보면서 박 씨는 대장정을 결심했다.

“언젠가 꼭 해보고 싶었어요. 지금까지 온 것보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더 많잖아요. 그 마음을 다지고 싶었어요. 제 욕심으로는 은총이가 커서 나아지면 손잡고 같이 가고 싶었지요.”

아들 손을 잡을 순 없었지만 박 씨는 하얀색 티셔츠에 아들의 사진을 새겨 넣고 함께 걷는다는 마음으로 대장정에 나섰다. 하루에도 몇백 번씩 티셔츠 속 아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걷는 40일간의 여정. 늦가을 찬바람에 귓불이 에이는 오늘도 박지훈 씨와 박봉진 씨는 부여를 지나 서울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서울에 도착해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과의 면담을 요청하고 정부의 지원을 호소하는 희귀 난치병 부모들의 탄원서와 온라인(
www.papalove.or.kr)과 오프라인을 통해 참여한 100만 시민의 서명서를 전달할 예정이다.

우선 기자
imsun@donga.com